나는 국내 제약사를 첫 직장으로 다녔다.
사실 선택했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었지만 영업직이란 영업직에는 전부 이력서를 넣던 중에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와서 갔다가 합격을 했기 때문에 선택했다기 보다는 그냥 걸렸다라는게 맞을 듯 하다.
그 회사는 약 38번째 이력서였는데 당시 100개는 기본으로 이력서를 써야 한다는 시대였기에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그래도 서울에서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대학의 공대생이니 다른 친구들은 대기업과 상장기업들에 많이 이력서를 제출했겠지만 나는 사정 상 그러지 못 해서 중견기업 또는 중소기업, 그게 아니면 성적을 안 보는 편인 영업직에 도전해야 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구직자, 아니 구직자면 이미 늦었겠다. 본인의 대학과 성적은 결정됐을테니... 고등학생, 혹은 수험생이라면 대학에 가면 놀 수 있다는 말에 속지 말자. 그 말을 믿고 놀다가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한 자, 그 말로가 힘들 것이다. 나는 대학에 가면 놀아도 된다는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공부를 등한시 하다가 3.0도 안 되는 점수를 받고 말았다.
암튼 서론이 길었네. 38번의 이력서 제출 만에 면접을 보게 된 나는(사실 전에도 몇 번 보긴 했다.) 생각보다 떨리지 않았던 내 심장에 뿌듯해 하며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장에는 약 100명 이상의 면접자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면접을 세 명씩 봤던 것 같다. 앞에는 "나 임원이오"라고 얼굴과 체형에 팍팍 티가 나는, 나중에 알고 보니 사장님이었던 분이 중앙에 앉아 다른 임원들과 면접을 보고 있었다.
들어가서 내가 중앙에 앉았고 나머지 두 명을 양쪽에 거느린 모양새로 면접을 봤다. 그런데 양쪽 친구들이 어찌나 버벅대고 떨던지.. 그 중 하나는 목소리까지 떨려서 같이 면접을 보는 나도 안쓰럽더라. 내가 면접관이라도 안 뽑겠다 싶었지. 몇 차례의 질문이 오고가고 나중에는 세 명 중에서 나에게 질문이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 지금 기억나는 질문은 공부는 왜 이리 못했냐, 본인의 전공이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될 것 같느냐 등 별로 영양가 있는 질문은 아니었는데 내 답변이 유려했다거나 고급스럽지는 않았지만 사회 초년생이 할 수 있는 답변으로는 적당하기도 하면서 긴장하지 않고 자신있는 모습은 잘 보여준 것 같았다.
회사에서 주는 면접비를 받고 밖에 나왔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나와 함께 면접을 보면서 가장 많이 떨었던 사람을 만났다.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 그쪽은 합격한 거 같아요. 난 아무래도 힘들겠어요." 처음 보는 사람이 별 말을 다한다 싶었지만 그 사람이 보기에도 내가 잘 봤겠지. 나도 면접장을 나오면서 합격을 확신했으니 말이다.
벌써 20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전문직이 아니고 특히나 영업직의 면접이라면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자신감과 조금의 겸손함, 그리고 살짝 준비된 업계 지식만 있다면 면접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면접 학원도 있고 준비를 많이 한다는데 세월이 흘러 우리 회사 영업직 신규 직원들의 면접을 책임지는 내가 보기에는 딱히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다.